
에바리스트 갈루아
Évariste Galois
생애
방정식이 근호로 풀리는지를 근들의 대칭 구조와 연결한 수학자. 갈루아는 만 20세에 이미 방정식의 근을 서로 바꾸어도 보존되는 관계를 군으로 연구하고 있었다. 1832년 결투 전날 친구 오귀스트 슈발리에에게 보낸 약 7쪽의 유언 편지는 그날 밤 이론 전체를 처음 만든 기록이 아니라, 이미 진행한 연구의 결과와 남은 질문을 요약하고 원고 검토를 부탁한 문서였다. 그는 다음 날 결투에서 입은 총상으로 사망했다. 슈발리에와 갈루아의 동생이 원고를 보존했고, 리우빌은 1843년 그 원고의 중요성을 알린 뒤 1846년에 주요 논문을 출판했다. 이 작업은 오늘날 갈루아 이론이라 부르는 분야의 출발점이 되었다.
결정적 순간
에콜 폴리테크니크 입학 시험 두 번째 낙방
파리두 번째 입학시험에도 실패한 뒤 에콜 프레파라투아르에 들어갔다. 시험관에게 칠판 지우개를 던졌다는 이야기는 확인된 기록이 아니라 후대에 전해진 일화다.
공화주의 정치 활동과 투옥
공화주의 정치 활동으로 두 차례 체포되었고, 두 번째 사건에서는 수개월간 수감되었다. 정치적 격변 속에서도 기존 수학 원고를 계속 다듬었다.
슈발리에에게 보낸 유언 편지
결투 전날 친구 슈발리에에게 약 7쪽의 편지를 보내 이미 진행한 연구를 요약하고 남은 원고를 수학자들에게 검토받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다음 날 입은 총상으로 만 20세에 사망했다.
이 사람이 없었다면
아래 내용은 확인된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이 인물의 영향을 생각해 보는 가정입니다.
갈루아가 없었더라도 방정식과 대칭을 잇는 연구는 다른 수학자들을 통해 발전했을 가능성이 크다. 다만 근호에 의한 풀이 가능성을 군의 구조로 판별하는 언어가 자리 잡는 경로와 시기는 달라졌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