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텐디크

그로텐디크

Alexander Grothendieck

AD 1928 - AD 2014
파리
현대

생애

어려운 계산을 밀어붙이기보다 문제를 담는 언어 자체를 바꾼 수학자. 베를린에서 태어난 그로텐디크는 전쟁기 프랑스 수용소 생활과 아버지의 아우슈비츠 희생을 겪었다. 몽펠리에에서 독학한 뒤 파리와 낭시의 카르탕·슈바르츠·디외도네 등과 만나 함수해석에서 출발했다. 1959~1970년 IHÉS에서는 학생·동료들과 세미나와 방대한 공동 집필을 이어 가며 스킴·에탈 코호몰로지·토포스 같은 언어로 대수기하와 수론의 질문을 다시 조직했다. 1966년 필즈상을 받았지만 평화주의적 항의로 모스크바 대회에 가지 않았고, 1970년 군 관련 연구비 문제로 IHÉS를 떠났다. 말년의 은둔만으로 생애를 소비하기보다, 새로운 개념이 어려운 문제를 함께 풀 수 있는 공용 언어가 된 과정을 보는 편이 그의 수학에 더 가깝다.

한 문장으로
문제를 푸는 길은 때로 새로운 개념을 어둠에서 끌어내는 것이다.

결정적 순간

AD 1959

IHÉS — 연구 공동체와 새 언어

파리

디외도네를 비롯한 동료·학생과 세미나를 운영하며 스킴과 코호몰로지의 방대한 이론을 만들고 정리했다.

AD 1966

필즈상 — 모스크바에는 가지 않다

대수·위상 분야의 기여로 필즈상을 받았지만 평화주의와 군사화 반대의 뜻으로 모스크바 ICM 참석을 거부했다.

AD 1970

IHÉS 사임 — 연구비와 책임의 문제

연구소가 군 관련 자금을 다시 받는다는 사실을 둘러싼 갈등 끝에 사임했다. 이후 환경·반전 운동과 다른 형태의 수학 활동으로 옮겨 갔다.

이 사람이 없었다면

아래 내용은 확인된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이 인물의 영향을 생각해 보는 가정입니다.

초보자는 다항식 해집합이 왜 더 넓은 “스킴”을 필요로 하는지 비유로 만나고, 중급에서는 점보다 사상과 기저 변환을 본다. 고급에서는 층·코호몰로지·에탈 위상을 잇고, 전문 단계에서는 SGA의 공동 세미나가 지식을 생산한 방식까지 살핀다.

활동 지역

파리

Paris

IHÉS 연구소

영향 네트워크

영향을 받음
영향을 줌

MathVoyage 너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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