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로텐디크
Alexander Grothendieck
생애
어려운 계산을 밀어붙이기보다 문제를 담는 언어 자체를 바꾼 수학자. 베를린에서 태어난 그로텐디크는 전쟁기 프랑스 수용소 생활과 아버지의 아우슈비츠 희생을 겪었다. 몽펠리에에서 독학한 뒤 파리와 낭시의 카르탕·슈바르츠·디외도네 등과 만나 함수해석에서 출발했다. 1959~1970년 IHÉS에서는 학생·동료들과 세미나와 방대한 공동 집필을 이어 가며 스킴·에탈 코호몰로지·토포스 같은 언어로 대수기하와 수론의 질문을 다시 조직했다. 1966년 필즈상을 받았지만 평화주의적 항의로 모스크바 대회에 가지 않았고, 1970년 군 관련 연구비 문제로 IHÉS를 떠났다. 말년의 은둔만으로 생애를 소비하기보다, 새로운 개념이 어려운 문제를 함께 풀 수 있는 공용 언어가 된 과정을 보는 편이 그의 수학에 더 가깝다.
결정적 순간
IHÉS — 연구 공동체와 새 언어
파리디외도네를 비롯한 동료·학생과 세미나를 운영하며 스킴과 코호몰로지의 방대한 이론을 만들고 정리했다.
필즈상 — 모스크바에는 가지 않다
대수·위상 분야의 기여로 필즈상을 받았지만 평화주의와 군사화 반대의 뜻으로 모스크바 ICM 참석을 거부했다.
IHÉS 사임 — 연구비와 책임의 문제
연구소가 군 관련 자금을 다시 받는다는 사실을 둘러싼 갈등 끝에 사임했다. 이후 환경·반전 운동과 다른 형태의 수학 활동으로 옮겨 갔다.
이 사람이 없었다면
아래 내용은 확인된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이 인물의 영향을 생각해 보는 가정입니다.
초보자는 다항식 해집합이 왜 더 넓은 “스킴”을 필요로 하는지 비유로 만나고, 중급에서는 점보다 사상과 기저 변환을 본다. 고급에서는 층·코호몰로지·에탈 위상을 잇고, 전문 단계에서는 SGA의 공동 세미나가 지식을 생산한 방식까지 살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