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어슈트라스

바이어슈트라스

Karl Weierstrass

AD 1815 - AD 1897
출생: 오스텐펠데
활동: 베를린
계몽주의

생애

마흔 살 무렵까지 김나지움 교사로 일하다 대학으로 옮긴 분석학자. 1854년 아벨 함수 논문이 주목받아 쾨니히스베르크 대학 명예박사를 받았고, 1856년 베를린 산업연구소에서 교수 경력을 시작한 뒤 베를린 대학 교수직도 제안받았다. 그의 강의는 수렴·연속·해석함수를 엄밀하게 다루는 분석학의 표준을 세우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 모든 점에서 연속이지만 어디에서도 미분할 수 없는 함수는 당시의 기하학적 직관만으로 함수를 이해할 수 없음을 보여 주었다. 제자 소피야 코발레프스카야의 연구와 학계 진출도 오랫동안 지원했다.

한 문장으로
수학자에게 시인의 눈이 있어야 한다.

결정적 순간

AD 1854

아벨 함수 논문으로 학계의 주목을 받다

브라운스베르크

김나지움 교사 시절 발표한 아벨 함수 논문이 널리 알려졌고, 쾨니히스베르크 대학이 명예박사를 수여했다. 베를린의 교수 제안은 1856년에 이어졌다.

AD 1872

연속이지만 어디서도 미분 불가능한 함수

괴물 함수 발표. 직관에 의존한 분석학을 무너뜨리고 완전한 ε-δ의 필요성 증명.

AD 1885

바이어슈트라스 근사 정리

닫힌 구간의 모든 연속 함수는 원하는 정확도까지 다항식으로 균등 근사할 수 있다. 이후 근사론과 수치해석의 중요한 출발점이 되었다.

이 사람이 없었다면

아래 내용은 확인된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이 인물의 영향을 생각해 보는 가정입니다.

바이어슈트라스가 없었다면 분석학의 엄밀화 자체가 멈추지는 않았겠지만, 그의 강의와 제자들을 통해 퍼진 수렴·연속·함수 개념의 표준은 다른 경로로 자리 잡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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