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르키메데스
Archimedes
생애
살아 남은 저작과 후대의 전설을 나눠 읽을수록 더 놀라운 수학자. 아르키메데스는 구와 원기둥의 부피, 포물선 넓이, π의 범위를 소진법과 평형 아이디어로 다뤘다. 이는 후대 적분 방법을 떠올리게 하지만 현대 미적분과 같다고 할 수는 없다. 밀도와 부력에 관한 원리는 그의 작품에 남아 있다. 반면 왕관을 욕조에서 풀고 “유레카”를 외쳤다는 이야기, 거울로 함대를 불태웠다는 이야기, 죽음 직전의 말은 수백 년 뒤 자료에서 전해진다. 20세기에 재발견된 아르키메데스 팔림프세스트는 우리가 그의 방법을 더 자세히 읽게 해 준다.
결정적 순간
부력의 수학과 “유레카” 전승
시라쿠사《부유체에 관하여》에는 액체 속 물체의 평형을 수학적으로 다룬 결과가 남아 있다. 왕관·욕조·알몸 질주 이야기는 후대 비트루비우스가 전한 유명한 일화다.
소진법 — 곡선을 엄밀하게 다루다
다각형을 안팎과 바깥에 반복해 넣어 넓이와 부피를 범위 안에 가두었다. 후대 적분과 닮은 직관을 주지만, 무한소나 극한을 같은 방식으로 정의한 것은 아니다.
시라쿠사 함락 — 여러 갈래로 전해진 마지막
로마군이 시라쿠사를 함락할 때 병사에게 살해되었다는 핵심은 후대 기록들이 공유한다. 다만 원을 그리고 있었는지, 무슨 말을 남겼는지는 기록마다 다르다.
이 사람이 없었다면
아래 내용은 확인된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이 인물의 영향을 생각해 보는 가정입니다.
아르키메데스 혼자가 미적분의 필수 조건은 아니었다. 그러나 곡선 넓이와 부피를 엄밀하게 다룬 예는 고대 수학이 도달한 높이를 보여 준다. 그의 글이 전하지 않았다면 뉴턴과 라이프니츠 이전의 넓이·부피 사고가 얼마나 깊었는지를 훨씬 알기 어려웠을 것이다.
주요 업적1개
원의 넓이 계산
BC 250소진법을 사용하여 원의 넓이를 계산. 적분의 선구적 방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