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케플러
Johannes Kepler
생애
관측값과 아름다운 원 모형이 맞지 않을 때 모형을 바꾼 천문학자. 신학을 공부하던 케플러는 그라츠의 수학 교사·천문력 제작자가 되었고 1600년 프라하에서 튀코 브라헤와 일하기 시작했다. 튀코의 관측은 좋은 경우 몇 분각 수준이었고, 케플러가 화성 모형에서 무시하지 않은 유명한 차이는 약 8분각이었다. 그는 수년간 원과 주전원 조합을 시험한 뒤 타원을 채택해 1609년 첫째·둘째 법칙을 출판했다. 1619년에는 공전주기의 제곱이 궤도 긴반지름의 세제곱에 비례한다는 셋째 법칙을 제시했다. 이 결과는 뉴턴의 역학에서 설명됐지만, 한 사람의 ‘2000년 교리 파괴’보다 코페르니쿠스 모형·튀코의 자료·케플러의 계산·뉴턴의 이론이 이어진 경로로 보는 편이 정확하다. 1615년부터 이어진 어머니 카타리나의 마녀 혐의 사건에서는 법적 방어에 깊이 관여했고, 그녀는 1621년 석방됐다.
결정적 순간
《새 천문학》 — 케플러 1·2법칙
튀코 브라헤가 남긴 화성 관측은 좋은 경우 수 분각 수준의 정밀도를 가졌다. 케플러는 여러 해 동안 이 자료와 모형의 오차를 비교해 원 대신 타원 궤도를 채택했다.
《세계의 조화》 — 케플러 3법칙
같은 중심천체를 도는 행성에서 공전주기 제곱은 궤도 긴반지름 세제곱에 비례한다는 관계를 제시했다.
어머니의 마녀재판 변호
어머니 카타리나가 마녀 혐의로 구금되자 케플러는 법률·논리적 반박을 준비했다. 1621년 석방됐지만 장기간의 절차와 구금은 가족에게 큰 피해를 남겼다.
이 사람이 없었다면
아래 내용은 확인된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이 인물의 영향을 생각해 보는 가정입니다.
초보자는 원과 타원 위에서 행성의 위치를 비교한다. 중급에서는 같은 시간에 쓸어 내는 면적이 같다는 둘째 법칙을 실험한다. 고급에서는 긴반지름과 주기 자료를 로그 그래프로 검증하고, 전문 단계에서는 화성 관측의 잔차·타원 방정식·뉴턴의 역제곱 법칙이 어떻게 서로 다른 종류의 설명을 주는지 연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