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턴
Isaac Newton
AD 1643 - AD 1727
출생: 울즈소프
활동: 케임브리지
계몽주의
생애
1665-1666년 페스트로 케임브리지가 닫힌 동안 뉴턴은 울즈소프에서 급수·유율법·빛·중력에 관한 중요한 생각을 발전시켰다. 그러나 완성된 미적분과 만유인력 이론이 한 해에 번개처럼 끝난 것은 아니다. 배로·데카르트·갈릴레오·케플러·훅 등 선행 작업과 이후 수십 년의 계산·논쟁·편집이 1687년 《Principia》로 이어졌다. 말년에는 조폐국에서 화폐 개주와 위조 수사를 적극 수행했다. 바닷가의 소년 문장은 마지막 말이 아니라 지인이 전한 회고이며, 거인의 어깨 문구 역시 훅과의 긴장 때문에 여러 해석을 낳지만 그 자체로는 선행 연구에 대한 빚을 표현한다.
한 문장으로
내가 더 멀리 보았다면, 거인의 어깨 위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결정적 순간
AD 1666
페스트 시기의 집중 연구
울즈소프울즈소프에서 급수·유율법·프리즘·중력 문제의 초기 핵심을 발전시켰다. 결과들은 이후 여러 해 동안 수정되고 출판됐다.
AD 1687
《Principia》 출간
운동 법칙과 역제곱 중력으로 케플러 법칙을 도출하고 지상·천체 현상을 하나의 수학적 연구 프로그램 안에 놓았다.
AD 1696
왕립 조폐국에서의 두 번째 경력
감독관을 거쳐 1699년 책임자가 됐고 화폐 개주와 위조 수사에 깊이 관여했다. 사형 선고는 당시 법원 제도의 결과이지 뉴턴 개인이 내린 판결은 아니다.
이 사람이 없었다면
아래 내용은 확인된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이 인물의 영향을 생각해 보는 가정입니다.
뉴턴의 힘은 네 분야를 무에서 만든 데 있지 않고, 지상 운동과 천체 운동을 같은 수학적 원리로 계산하게 한 종합에 있다. 라이프니츠의 미적분과 훅·하위헌스 등 동시대 연구가 있었으므로 과학혁명 전체를 한 사람에게 의존시키지는 않는다.
주요 업적1개
미적분학 발명
AD 1687무한소 해석학의 기초 확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