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르마
Pierre de Fermat
AD 1607 - AD 1665
툴루즈
르네상스
생애
툴루즈 의회의 법률가로 일하면서 메르센의 서신망을 통해 수학을 연구한 페르마. 디오판토스 문제에서 현대 정수론으로 이어지는 질문을 만들고, 파스칼과 확률 문제를 논했으며, 접선·극값·넓이 계산과 해석기하에도 기여했다. 가장 유명한 것은 1637년 무렵 《Arithmetica》 여백에 남긴 마지막 정리 메모다. 이 메모는 아들이 1670년 펴낸 사후 판본으로 알려졌고 증명은 남지 않았다. 와일스의 1994년 논증은 페르마가 알 수 없었던 타원곡선과 모듈러 형식의 거대한 연결을 사용했다. 취미 천재 한 명이 네 분야를 창조했다기보다, 직업 제도 밖의 연구자가 편지와 고전 텍스트를 통해 유럽의 수학 네트워크를 흔든 사례다.
한 문장으로
여백이 너무 좁아 적을 수 없다.결정적 순간
AD 1637
디오판토스 여백의 메모
툴루즈《Arithmetica》 라틴어 번역본에 정리와 증명 주장을 적었다. 원본은 남지 않았고 1670년 아들이 펴낸 사후 판본을 통해 전해진다.
AD 1640
페르마의 작은 정리
소수 p에 대해 a^p ≡ a (mod p)임을 발견. 300년 후 RSA 암호의 기반이 됨.
AD 1654
파스칼과의 서신 — 확률의 탄생
귀족 도박꾼 슈발리에 드 메레의 질문을 두고 파스칼과 편지 교환. 기댓값이 처음 등장.
이 사람이 없었다면
아래 내용은 확인된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이 인물의 영향을 생각해 보는 가정입니다.
페르마의 여백 메모보다 더 큰 유산은 문제를 푸는 동안 생긴 수학이다. 무한강하, 소수에 관한 정리, 접선과 극값 방법, 파스칼과의 확률 서신이 서로 다른 후속 전통을 자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