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일러
Leonhard Euler
생애
오일러는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베를린의 학술원에서 해석학·수론·역학·천문·그래프 문제를 잇는 방대한 논문과 교과서를 썼다. 바젤 문제의 합 π²/6, 쾨니히스베르크 다리, 함수와 복소지수에 관한 저술은 서로 멀어 보이는 문제를 계산 가능한 언어로 바꾸는 능력을 보여 준다. 오른눈 시력은 젊을 때 병 뒤 악화됐고 1771년 백내장 수술 합병증 뒤 거의 보지 못했지만, 아들·조수·서기와 함께 구술로 연구를 계속했다. e·i·f(x) 등 일부 표기를 도입하거나 널리 퍼뜨렸지만 π와 Σ 등은 선행 사용자가 있었다. 사후 출판이 오래 이어질 만큼 생산적이었다는 사실은 정확한 작품 숫자 경쟁보다 더 놀랍다.
결정적 순간
바젤 문제 — 합 속에서 π를 만나다
상트페테르부르크1 + 1/4 + 1/9 + … = π²/6임을 보였다. 현대 기준에서 논증을 더 엄밀하게 다듬을 부분이 있었지만 결과와 새 방법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복소지수와 삼각함수의 연결
《Introductio》에서 복소지수 관계를 체계적으로 전개했다. e^(iπ)+1=0은 그 일반 공식의 특별한 경우다.
시력을 잃은 뒤에도 이어진 협업
거의 보지 못하게 된 뒤 기억력과 구술을 활용하고 가족·조수·서기의 도움을 받아 연구와 출판을 계속했다.
이 사람이 없었다면
아래 내용은 확인된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이 인물의 영향을 생각해 보는 가정입니다.
오일러의 영향은 한 사람이 18세기 수학을 만들었다는 데 있지 않다. 베르누이 가문, 학술원, 가족·조수와 교류하며 서로 다른 분야에 재사용할 표기와 계산법을 만들어 지식의 연결 비용을 낮췄다.
주요 업적1개
오일러 공식
AD 1748e^(iπ) + 1 = 0, 수학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식으로 불린다.